두샘의 영월여행 4 석항트레인스테이와 국가지정 명승 제76호 선돌

정흥교 | 기사입력 2021/08/03 [17:31]

두샘의 영월여행 4 석항트레인스테이와 국가지정 명승 제76호 선돌

정흥교 | 입력 : 2021/08/03 [17:31]

 


I. 석항트레인스테이

 

<동강한우>에서 저녁을 먹고 6시에 50분에 출발했는데 1620분만에 석항트레인스테이에 도착했다. 수원이었다면 날이면 날마다 밀릴 시간대인데 지체나 정체를 몰랐다.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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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항역

 

710분 석항역에 도착했다. 석항역은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석항리에 있다. 1923년 상동광업소가 문을 연 것을 계기로 1957년 여객열차도 운행을 시작하였고 1980년대 연간 유동 인구가 29만명을 넘었다. 하지만 1989년 석탄합리화정책으로 탄광들이 문을 닫았고, 주민들이 떠나면서 2007년 여객열차 운행이 중지되었다. 2003년 코레일에서 폐열차 9량과 레일 등을 지원했고 영월군은 201312, 2463규모로 167300만원을 들여 숙박 시설과 카페를 조성했다.

 

Nostalgia 석항 간이역 체험시설은 영월읍에서 국도 38번 국도로 10분 거리에 석항역에 조성된 열차체험시설이다. 국내 최대 저탄장이었던 석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숙박 체험과 체험시설이 조성된 간이역 식당에서 광부들이 즐겨 먹던 고추장 연탄삼겹살을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서부시장에서 저녁을 먹고 왔지만, 그보다는 평일에는 코로나로 여행객이 적어 운영하기 어려운가 보다. 카페도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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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항역을 기준으로 우측에 석항트레인스테이가 있다. 평일에는 관광객이 적어 이용하기가 쉬웠다.

 

기차에서 잠을 자본 경험은 고2 때 제주도를 가기 위해 목포행 완행열차를 조치원에서 타고 가다가 졸리면 각자 자리에서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졸음 반 선잠 반으로 자면서 새벽에 목포에 도착했던 적이 있다. 침대칸이 아니라 일반실에서 졸음을 참다가 지쳐 잠든 것이다.

 

열차 침대칸을 이용한 것은 중국 하얼빈에서 백두산 천지 아래에 있는 이도백하역까지 왕복한 거로, 침대칸에서 일반열차처럼 앉아가다가 잠을 자려면 2층 침대를 벽면에 직각이 되도록 내리면 된다. 밤이면 밖이 암흑이기에 자면서 만주벌판을 횡단했다. 기차는 달려가고 열차 폭의 한계로 2층 침대를 펼치고 자면서 갈 수밖에 없었지만 석항트레인스테이는 어떨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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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용 물놀이 시설인가?

 

한마디로 원룸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신발 벗는 현관이 있고 화장실에 샤워용 수도꼭지는 잘 만져야 한다. 화장실이 좁기에 잘못하면 화장지를 망친다. 그리고 이불장에 옷장이 있다. 닭강정과 전병, 메밀전을 먹고 피곤해서 그랬는지 나는 곧바로 잠에 떨어졌다. 밤새 내리는 빗소리는 청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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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과 채탄에 관한 벽화

 

폐광으로 모두 다 사라져버린 지금은 믿기지 않지만, 전성기 영월은 강원도에서 삼척 다음으로 광업이 성한 지역이었다. 1967년 영월에는 13개 광구의 탄광이 있었고 거기서 4,228명이 일했다.

마차리의 영월광업소는 일제강점기이던 1935년에 영월화력발전소 연료 공급을 위해 개발됐다. 여기서 캐낸 석탄은 곧바로 케이블카(삭도)에 실려 12떨어진 화력발전소로 옮겨져 전기가 됐다. 1972년 사업성 부족으로 한번 폐광됐다가 석유파동으로 다시 살아났으나 1990년에 영원히 문을 닫았다. 영월이 탄광지대로 이름을 날리면서 마차리는 일자리를 찾아온 젊은이로 늘 북적였다.

 

평소보다 느긋하게 일어나 간단히 세수하고 밖으로 나와보았다. 사무실이 있는 중앙 부분에 안내판이 있다.

 

일상의 편안하고 아늑한 잠자리를 벗어나, 좁지만 아기자기한 열차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석항역을 비롯한 인근 거리와 골목에는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재미있는 간판과 벽화가 조성되어, 늦은 걸음으로 30분 정도 거닐면 과거 우리 경제의 한 축을 이루던 서민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단다. (영월군 관광 안내도 발췌)

 

시간이 멈춰버린 폐광마을 석항,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인 석항역의 폐기차를 개조해 만든 이색 숙소와 식당, 카페가 있어 과거와 현재,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고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편안하고 특별한 휴식을 전하고 싶단다. 아름다운 동강과 별이 흐르는 고장 영월과 석항 지역의 주민들, 사회적기업 오요리아시아가 함께 관광객 여러분을 맞이한단다. 소소하지만 여유 있고 행복한 시간을 사랑하는 가족, 친구와 석항트레인스테이에서 누려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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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항역사와 삼거리 사람들의 삶과 기억 안내 게시판

 

석항트레인스테이는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니라 영월지역 복합문화공간으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 부활을 도모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석항역은 태백선으로 열차는 달리지만 정차하여 승객을 승하차하지 않는다. 안쪽이 어두워 역 안으로 들어가 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내가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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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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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항역 앞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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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한때 석항은 7개의 요정집과 5개의 다방, 건달들도 여러 파로 많았단다. 근대화의 유산으로 남겨진 석항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부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석항트레인스테이를 떠나 14거리의 맛집인 <다슬기 향촌 성호식당>8시경 도착했다. 7시에 문을 여는데 평소에도 늘 음식점 앞에 현지인들이 줄 서서 기다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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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장국만 나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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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식당의 자랑

 

남들이 다 맛있다고 하니 맛있게 아침 식사를 했다.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은 것 같다.

J. 선돌

 

202178일 영월 둘째 날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첫 번째 방문지는 선돌이다. ‘선돌은 선사시대의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 자연석 또는 약간 가공한 돌기둥을 세워 놓은 것으로 기념비, 묘비, 경계의 표지 또는 종교적 의미에서 세운 것으로 보이나 확실하지는 않다. 대학교 1학년 때, 충북 중원군 가금면 입석리(立石里) 마을 앞에 비석이 서 있었다. 그때만 해도 비석의 존재를 몰라보고 전설같이 들려오는 이야기에 솔깃했으나 그때뿐이었다. 얼마 뒤 삼국시대의 비가 발견됐다고 보도가 되더니 1981318일 대한민국 국보제 205호로 지정받아 비각이 세워졌다.

 

우리나라 안에 선돌이라는 땅이름이 무려 360여 개나 된단다. 이를 무시하고 선돌만 검색하고 갔는데 10분이면 될 줄 알았는데 내비게이션이 이상한 곳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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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769-4

 

우리가 찾아갈 곳은 방절리 373-1’6.2나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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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는 방절리 769-4’이고 도착지는 방절리 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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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 주차장

 

그럼, 그렇지! 관광지인데 주차장이 도로와 가깝고 입구는 이 정도는 돼야 한다. 앞으로 길도우미가 이상한 길로 가라해서 가보면 멈추어서 다시 검색하란 하늘의 명령이었다. 잘못 간 곳에서 여기까지 20분 헤맸지만, 가슴은 태양보다 더 먼 곳을 다녀왔다. 주차장도 넓고 한산했으며 화장실은 언제 청소를 했나 아주 깨끗했다. 무엇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얼마나 오르내려야 하나 입구에 있는 <선돌 농산물 매점> 여사장님이 귀찮게 여길 정도로 물어보았다.

 

해발 320m 소나기재라는 이정표가 있고 곧 주차장 한쪽에는 선돌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영월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소나기재 정상 부근 선돌 주차장에 주차한 후 오솔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강변 절벽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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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진 절벽 사이로 보이는 세상 풍경

 

절벽 앞으로 쪼개지다 만 큰 바위인 선돌이 보인다. 오솔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고 높은 절벽에서 바라보는 강과 들판의 경치가 장관이며, 뛰어난 절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다. 높이 70m 정도의 바위는 큰 칼로 절벽을 내리치다 그친 듯한 형상을 이룬 입석이다. 거대한 탑 모양으로 솟아있는 바위는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기에 신선암이라 불리기도 한다. 선돌 아래 깊은 소에 있는 자라바위 전설에 의하면, 남애마을에 태어난 장수가 적과 싸우다 패하여 자라바위에서 투신했는데 그가 변하여 선돌이 되었다고 하며, 그 후로 선돌에서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꼭 이루어진다고 한다.

 

현재의 38번 국도가 개통되기 전에는 선돌 밑으로 옛 신작로가 있었으며 1905(고종42 )에 목탄차가 다닐 수 있도록 석축을 쌓아 확장하였다. 또한 선돌 지역은 영화 "가을로"의 촬영지라는 안내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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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에서 헤매다 왔다니? 앞에 보이는 강은 서강, 어제 한반도지형에서도 서강

 

단종 임금의 유배지는 영월의 청령포였는데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돌을 지나쳐야 했다. 단종은 기묘한 형상의 선돌을 볼 때만큼은 고된 귀양길에서 오는 피곤함을 잠시 내려놓았다고 한다.  

 

영월의 선돌은 세운 돌이 아니다

박힌 돌도 아니다 두 팔 벌려 벼락 치길

올려 놓은 통나무를 도끼로 내려치며

장작 패던 번갯불

 

힘들면 가져와라

고려고 조선이고

방절리 구하도로

올가미 씌어놓고

하늘의 경종을 울리리라

촛대바위

불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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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을로>의 촬영지란 언내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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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참고될 것 같아 선돌 주차장에 세워진 안내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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