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 벌려 열열히 환영하는 성해광장 (안희두 백두산 여행기 1)

정흥교 | 기사입력 2019/10/16 [12:06]

양팔 벌려 열열히 환영하는 성해광장 (안희두 백두산 여행기 1)

정흥교 | 입력 : 2019/10/16 [12:06]

 

 

[수원인터넷뉴스] 추석 전후에 해외여행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백두산이 생각났다. 나는 19948월에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일원으로 연변 조선족 문인들과 <한중수교 3주년 기념 문화교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이태극 박사님과 이근배 당시 시조시인협회 회장 등과 중국에 갔다. 당시만 해도 상해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여 중국 국내선으로 심양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경비행기로 연변에 도착했다. 연변 시조시인들과 회의를 마치고 북파(백두산 북쪽)로 백두산에 올랐는데 오전 내내 청명한 날이었다

 

 여행사 인터넷 안내 자료

  

그리고 국가보훈처의 보훈교육연구원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일원으로 간도 지역의 항일운동 유적지를 둘러보러 2007년과 20102번을 갔는데, 2010년에만 서파(백두산 서쪽)를 통해 백두산에 올랐다. 급한 김에 손수건으로 상을 만들고 한국에서 가지고 간 소주를 부며 큰절을 올렸다. 비는 내리지만 20여 분, 비구름과 함께 춤추는 백두산 천지를 보았다.

 

 

 

서파로 백두산 천지에 오르며

안희두

    

16년 전 815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우뚝우뚝 솟은 봉우리에 담긴

해맑은 천지

1945815일 정오

삼천리 방방곡곡에

울면서 웃던 그 날 그 모습이었으리라

 

백두산 천지에 참배하러 가는 아들이

어머님도 걱정이 되셨나,

아니면 몰래 따라나섰나

꿈속에서 뭐라 뭐라 걱정하셨다

백두산 발밑에 다가가면서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가이드 핸드폰에선 폭우란다

아침도, 점심도 거르고 쏟아진단다

 

고산화원에 이르자

겸연쩍게 울다 웃는 하늘과 꽃들

서파주차장에 이르자

백두산 봉마다 산신령님

흰 두건 눌러쓰고

수염을 늘어뜨렸다

그래도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모습은 뚜렷하기에

점점 빨라지는 발걸음

 

백두산 천지다

눈웃음 건네고

손수건을 펼쳐 제단을 만든다

오이와 고추장, 초콜릿 올려놓고

잔을 올린다

천지신명이시여!

오늘 천안(天顔)을 뵙도록 허락해주시어 고맙습니다

천지신명이시여!

비록 분단된 조국이지만 돌아서라도 올 수 있어 감사합니다

천지신명이시여!

내일은 통일된 조국의 품으로 오르게 해주소서

 

(http://cafe.daum.net/an3140/JvC6/66)

2010714일 백두산 천지는 아침부터 폭우였는데 우리가 오른 오후 2(한국시각 3시경)부터 30여 분간 모습을 드러내곤 다시 구름이 뒤덮었다. 그때 쓴 1.

 

 성해공원에서

 

이번 백두산 관광은 살아생전 아내와 함께 백두산을 올라 함께 기쁨을 만끽하며 민족의 정기를 말이나 영상이 아닌 체험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과자와 식혜를 들고 가서 큰절을 올리며 점점 어려워지는 국운 왕성을 기원하고 싶었다.  

 

 성해공원에서

  

918일 새벽 4, 집에서 출발해 인천공항 1청사에 도착하니 530, 미팅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왔는데 광주광역시에서 올라오시는 8분은 벌써 도착하였다. 인천공항에서 예정대로 출발해 대련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일정표에 기내식이 적혀 있음에도 짧은 거리라 음료수 정도 기대를 했는데 소고기 고추비빔밥이 나와 맛있게 먹었다.

 

입국 절차를 마치고 나오다가 가이드와 만나기 직전 같은 여행사팀의 용감한 68세 용띠 아저씨들이 중국 술을 사려고 흥정을 했는데 55만 원이 넘는 술을 5만 원 정도로 잘못 생각해 카드를 긁으려는 순간 취소했다. 언어가 잘 소통되지 않는 외국에서 환율을 조심해서 잘 계산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친 계기가 되었다.

두 여행사에 백두산 관광을 신청한 사람은 418명이었다.

 

33인승 버스가 나와 여유롭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지 않아도 멀미에 고생이 심한 편인데, 여행 기간 내내 앞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 일행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가이드 말대로 한국에서 살면서도 만나지 못했는데, 461나 떨어진 중국으로 날아와 45일 백두산 여행을 같이하게 되는 기막힌 인연이다.  

 

 성해공원에서

  

우리는 곧바로 성해광장(星海廣場)으로 향했다.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놀이공원도 보이는데, 바다 쪽은 가슴이 펑 뚫리도록 시원했다. 건축물로 파도를 형상화했나? 아니면,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경사도가 보기보다 심해 곡선 부분으로 오르려니 미끄러진다. 몇몇 젊은이들이 곡선 부분의 경사로를 따라 오르자 경비병이 스피커 방송으로 경고하며 쫓아온다. 그리고 바다엔 현수교가 양팔을 벌리고 달려와라, 마음껏 품어주리라!’ 외치는 것 같았다. 대련[大連, 大连 다롄(Dalian)]의 인구가 680만 명이라는데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주장할 정도로 이렇게 넓은 광장이 필요할까? 땅은 국가 소유이기에 가능하겠구나, 놀러 나온 중국인들이 한결 밝아 보였다. 광장에서 40여 분 머물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출발했다.  

 

 성해공원에서

  

1130분이라 이른 점심 같지만, 시차가 우리보다 1시간 늦기에 한국시각으로 1230분이니 적당한 시간이다. 중국식당엔 원형 테이블로 9인분씩 차려놓고 알아서 먹으란다. 단체로 온 팀을 나누라 할 수도 없고, 우리 부부가 쪼개져 앉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느 식당을 가나 한결같이 9인분씩 나눠놓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하듯 한국이라 생각하면 서로가 힘들어진다기에 참았지만, 여행 내내 불편했다. 반찬은 추가가 안 되고 뜨거운 차와 밥만 무제한이다. 식당에 손을 씻을 물이 없어 가이드에게 말을 하니, 손뼉을 세게 치면 세균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맞아서 죽는단다. 웃어야지!

 

 성해공원에서

   

1215분경 단동으로 출발했는데 4시간 정도 걸린단다. 1240분경 왼쪽으로 비사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고속도로라 정차할 수도 없고 마지막 날 대련으로 돌아오며 다시 볼 수 있다고 하기에 쉽게 잠에 빠졌다. 마지막인 922일 오전 737분경, 대련으로 접근하며 가이드가 깨워 비사성 위치를 말해주었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으로 사진기에 담기는 역부족이다. 거기에 더해 고층 아파트가 시야를 점령해버렸다.

 

 비사성

 

비사성(卑沙城)은 고구려 천리장성의 시발점이다. 당나라 태종이 즉위한 626년부터 고구려는 당나라의 침략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안시성, 백암성, 부여성까지 연결되는 장성을 쌓기 시작해 16년만인 647년 완성했다고 한다. 비사성은 중국에서 평양에 갈 때 꼭 들러야 하는 중요 지점으로 많은 침략을 받은 곳이다. 고구려 영령에게 감사의 묵념을 올렸다. , 고구려의 위대한 비상이여

 

 비사성

  

우리 일행 중 가장 멀리에서 온 팀이 한밤중인 자정에 출발했다고 한다. 가이드는 연변에서 왔는데, 1,300가 된다며 일반 기차로 18시간, 고속열차로 6시간 40분 걸린단다. 중국에서 5시간 정도 차를 타는 것은 이웃집으로 놀러 가는 시간으로 금방 도착한다고 말한다. 8시간에서 10시간은 되어야 이웃 동네로 마실간다고 하며, 16시간 정도 달려야 아 장거리 간다.’라고 생각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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