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두, 광교산에 올라 인생을 묻다 2

정흥교 | 기사입력 2021/01/04 [22:01]

안희두, 광교산에 올라 인생을 묻다 2

정흥교 | 입력 : 2021/01/04 [22:01]

 


종루봉을 들리지 않고 갈림길로 갔다면 다소 쉬웠는지는 모르나 최치원 선생님을 생각하며 신라 말기를 떠올릴 수 있었을까?

 

예전엔 날아다니던 길이 험지로 바뀌었다. 토끼재를 지나 광교산 정상에 다다랐는데 길이나 게시판이 오히려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쉬느라 머물다 보니 노루목 쪽에서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데, 토끼재에서 오는 사람들은 거침없이 노루목 쪽으로 사라졌다. 설마 산에 오는 사람들이 정상까지 37m 남았다는데 힘들다고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랴? 이정표가 수원시와 용인시로 다툴 뿐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정상을 알리는 배려는 적은 것 같다. 아니 정상에 오른 기쁨을 빼앗아 가고 칠칠치 못하다는 아쉬움만 선물하는 것 같다.

 

 광교산 정상 부근 이정표들(좌측 언덕길을 따라가면 노루목, 우측 험한 길로 올라가야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 좌측 언덕길이 바로 수원과 용인의 경계인 것 같다.)

 

 형제봉 또는 토끼재에서 1에 다다르며 광교산 정상을 가려면 암석을 밟으며 2를 거처 3의 정상에 다다랐다가 4를 거쳐 노루목 쪽 5로 가야 하는데, 6번 길을 거쳐 5로 가기에 중요한 광교산 정상을 놓치게 된다.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은 나무데크였다.

 

앞만 보고 뛰었다. 2015418일 저녁부터 봄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19일 오전 8시경부터 비가 그치나 했으나, 수원 공설운동장에서 출발한 지 10분 만에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13회 경기마라톤인데 골인 지점에 들어올 때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 기록은 4시간 3903. 자세한 내용은 수원인터넷뉴스(2015/04/26 억수로 쏟아지는 봄비를 뚫고 마라톤 풀코스를 내달리다)를 참고하기 바란다. 나의 신조는 할 수 있다. 그쯤이야 나도 한다는 도전 정신이었다.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582m)까지 오르며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간다. 예전에 대략 1시간 30분이면 오던 길인데, 1227분이니까 3시간 17분이나 걸렸다. 그나마 아직 이렇게라도 걸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만하길

多幸이다

 

쏘다니기 바쁘니

그만하길

千萬多幸

 

바쁘게

하루하루가 흘러

行福해서 幸福하다   

 

아직 걸어 다닐 수 있어 행복하다는 필자의 시조다. 이 시조를 쓸 때만 해도 하루에 9를 뛰어다닐 때인데 불과 1년 전부터는 저기 버스가 와도 체념해야 한다. 버스에 올라타도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 전철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버스에서 쩔쩔매는 노인들을 보면 택시를 타고 다니지. 복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정작 나도 택시비가 아까워 이용하기 쉽지 않다.

 

 앞에 사각기둥이 국가기준점, 필자가 앉은 곳이 광교산 정상, 좌측이 광교산 표지석이다. 정상이 너무 시시하죠? 아니 경기도 진산을 이렇게 깔고 뭉개도 되나요?

 

 

국가기준점[삼각점 수원 23] (2014119일 촬영)

경도 : 동경 127° 0204/ 위도 : 북위 37° 2042/ 높이 : 해발 581m


국가기준점은 581m라는데, 광교산 표지석은 582m이다. 열 발짝도 안 되는데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표지석 밑바닥은 해발 581m, 내가 앉았던 정상은 582m, 이제야 이해가 된다. 광교산 정상에 올랐는데, 나무데크와 광교산 표지석에 경기도의 진산인 정상은 한낱 초라한 돌덩이였다. 면적 847ha(8.47)로 수원과 용인을 아우르는 신성한 정상을 이래도 되나?

 

노루목을 거쳐 억새밭까지 왔는데 억새는 없고 돌무더기만 건장했다. 예전에도 억새밭을 복구하려고 꽤나 노력했었던 것 같은데 아쉬웠다.

 

 광교산 등산 안내도 일부이다.


2015년만 해도 이곳에 오면 물 한 모금 마시고 통신대 갈림길에서 아쉬움을 삼킨다. 양재 화물터미널에서 출발해 청계산과 바라산(428m), 백운산(564m)을 거쳐 상광교로 내려오는 산행에 3번이나 참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예상치 못한 급한 일이 생겨 다음에 참가한다며 미룬 게 현재까지 미완의 등산길이 되었다. 아니 생전에 가기는 틀린 것 같다. ‘때가 올 때 다음은 없다.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서 나의 삶을 살아가자.’ 가슴 속 꿈틀대는 꿈을 되새기며 통신대로 갈라져 광교헬기장에 올랐다가 출발지인 반딧불이화장실까지 4시간 30분이면 도착했었다.  

 

 억새밭에 원뿔 돌무더기, 성장을 멈춘 것 같다. (2014119)


억새밭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창성사 절터가 있는 약수터로 내려오며 엉금엉금 기었다. 약수터는 상광교까지 오는 사람들이 올라왔다가 물 한 모금 마시고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학교 정기고사나 방학을 앞두고 연수 장소로 체력단련을 하고 내려가 보리밥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던 기억들이 넘쳐난다. 지금은 맛도 볼 수 없는 막걸리가 가장 생각난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헌책방을 누비며 책을 구입하고 줄을 쳐가며 읽던 수많은 책, 문예지는 거의 버렸음에도 서재에는 시집과 수필집, 소설, 철학, 미술 등 단행본과 자연과학과 수학사 등 책장이 15개 정도였나 보다. 지난해 눈물을 흘리며 문예지를 일삼아 버린 것이 2,000여 권 되는가 보다. 아직도 남아있는 책들은 앞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1부터 스크랩하던 신문은 결혼하며 버렸고, 일요일이면 습관처럼 스크랩하던 것도 두세 번 버린 것 같다. 예전엔 스캐너가 프린트와 별도였는데 둘 다 구입하여 자료들을 컴퓨터에 모으기 시작했다. 스캔한 것을 한글로 읽어 들이는 아르미 프로그램까지 사들이며 모았던 자료들이 외장 하드 10여 개에 담겨있는데 버리려니 마치 사별하는 것 같다.

 

나의 청춘과 함께 엄청나게 쏟아부은 시간이 이곳 억새밭 돌무더기를 무너뜨릴 기세로 스쳐간다. 내가 죽은 후에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시절이 와서 문학관이 세워진다면 필요한 자료들인데 30여 년을 더 기다리지 못하고 내 손으로 버려야 하나? 거의 방문객이 없는 카페도 그렇다. 스크랩을 이제는 컴퓨터의 카페에 분류해왔는데, 저작권 문제가 있어 비공개로 저장해 놓았다(2만여 개). 이것도 마우스 클릭 한 방으로 날려야 하나?

 

약수터로 유명한 광교산 절터는 고려 때 높은 위상을 지녔던 사찰로, 현재 13,995면적의 절터만 남아있다. 예전에는 법성사라 불렀는데, 2010년에 창성사로 개명했단다. 규모도 크고 밤낮으로 예불을 올리던 스님도 많았을 텐데 남아있는 건 공허한 터에다 약수뿐이다. 지금도 나 자신이 무명에 가까운데 무슨 부질없는 꿈을 꾸는가. 법정 스님도 말빚을 지지 않겠다하셨는데 세찬 바람이 나의 볼을 때리고 간다.

https://blog.naver.com/damool38/221528649352광교산 창성사지  

 

육신을 다비하고

사리를 흩뿌려도

 

붓으로 뿌린 법문

산과 바다 덮었는데

 

보시한

말빚을 지지 않겠다

꿈만은 크십니다  

 

아내와 나는 잔치국수를 먹고 상광교 종점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멋진 다슬기 화장실이 있다. 여기까지 대략 3시간 20분 거리였는데, 오늘은 1357분이니까 4시간 47분이나 걸린 셈이다.

 

 수원시 버스정류장 인문학 글판 안희두 시 萬石공원에 가면


마지막으로 점검할 일이 하나 남았다. 관심 있는 독자님들은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 저는 대학을 다니면서 시와 소설을 습작했다. 1987년 시집 뫼비우스의 띠를 드립니다로 시인이 되었고, 지금까지 7권의 자유시집과 4권의 시조집을 출판했다. 1988년부터 <경기시조><수원문인협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해 1992년에 <한국시조시인협회>, 1997년에 <한국문인협회>, 2003년에 <국제PEN클럽 한국본부>로 활동 범위를 넓혔었다. 20082월엔 <경기시조시인협회 11대 회장>, 20133월에는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 26대 회장(지부장 겸임)>을 역임했다

 

 


2년간 수원문인협회 회장을 하면서 <수원문학인의 집>을 개관하여 초대 관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수원시와 공동으로 <수원시 버스정류장 인문학 글판>20139월부터 수원 시내 버스정류장마다 설치하기 시작했다. 상광교동 버스 종점 직전에 필자의 만석공원에 가면이란 시가 설치되었는데 지금도 있나 확인하러 걸어가 봤다. 벌써 7년이 넘었으니 2020년에 디자인을 바꾸며 작품도 교체되었다.  

 

 <수원시 버스정류장 인문학 글판>에서 필자(2013)


새해 일출  

 

얼마나 힘차고

휘영청 찬란함인가

우뚝 서서 바라보기엔

너무나 거룩하다

온 누리 밝게 비추소서

두루두루 감싸소서

 

 201277일 광교저수지 만수위 방류


2년 전 딸의 결혼식을 간소하게 했다. 6개월 전 장모님 장례식에도 간소하게 했는데, 내가 모신 손님은 자주 연락을 나누는 몇 분만 모셨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사전 예고도 없이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쉴 만하면 힘이 들어가고 휴식을 방해한다. 잠자리에서도 빙글빙글 지구의 자전을 체험한다. 쉬거나 눕지 말고 열심히 일하란다. 이번 산행 후 뭉친 근육을 푸는 데 일주일은 걸린 것 같다.

 

고 심재덕 회장은 2009년 사망하며 생전에 건축한 장안구 이목동 변기 모양 주택 해우재를 수원시에 기증했고, 염태영 시장은 이를 화장실문화전시관으로 개조해 화장실문화 운동의 메카로 활용되고 있다.

 

광교산의 거룩한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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