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두 창덕궁 탐방 6 구 선원전과 궐내각사

정흥교 | 기사입력 2020/12/22 [20:56]

안희두 창덕궁 탐방 6 구 선원전과 궐내각사

정흥교 | 입력 : 2020/12/22 [20:56]

 


11. 구 선원전 안내 게시판

 

종묘가 위패를 모시고 선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라면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선원전은 매달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생신날에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내는 궁안의 사당이었다. , 선원전은 궁 안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겼으며 왕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

 

 구 선원전 안내 게시판


선원전(璿源殿)은 조선 후기 숙종의 어진을 봉안하면서 다시 기능이 부활하였다. 1694년 숙종은 창덕궁 안 춘휘당을 선원전(璿源殿, 보물 제817)으로 개칭하고 어진(御眞)을 봉안하였다.  

 

 창덕궁 고건물 배치도 <구 선원전과 월내각사 일부>

 

9칸의 구 선원전 건물 앞쪽에 행각이 있고 양쪽으로 진설청(陳設廳)과 내찰당(內察堂)이 있고 동쪽 편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인 양지당이 있다. 건물 뒤편에는 의풍각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제기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 모셔진 초상화들은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창덕궁 후원에 새로 지은 신 선원전에 숙종(19영조(21정조(22순조(23익종(헌종의 아버지헌종(24)의 초상을 모시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 갔는데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구 선원전 앞


양지당(養志堂)은 선원전 동편에 있는데 왕이 제사 전날에 와서 머무르던 어재실(御齋室)이다. 선원전 뒤편에 있는 의풍각(儀豊閣)은 제사용 그릇과 도구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일제강점기에 신축했다. 양지(養志)는 고상하고 엄숙한 뜻을 배양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만복문은 양지당 남문이고, 만안문은 인정전과 통하는 문이다.  

 

 양지당


구 선원전(璿源殿)은 구조적으로 간결하고 불필요한 장식을 꾸미지 않은 건물로, 조선시대 왕실 신전 건물의 유례를 볼 수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현재는 궁내에 소장된 주요 유물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고 있다.

  

12. 궐내각사 일원

 

관청은 대부분 궐 바깥에 있었지만,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위해 특별히 궁궐 안에 세운 관청들을 궐내각사(闕內各司, 사적 제122)라고 불렀다. 그 가운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 등이 중심 시설이었다. 대부분 건물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하였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가운데로 흐르는 금천을 경계와 경관 요소로 삼았고, 여러 관청들이 밀집되면서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규장각, 대유재, 소유재는 단순한 도서관으로 기능이 변했다가, 그나마도 소장 도서들을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옮기면서 규장각과 봉모당 등 모든 궁궐 전각들이 헐리고 도로와 잔디밭으로 변해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2000 ~ 2004년에 걸쳐 복원된 건물이란다.

 

 내각(內閣)은 규장각(奎章閣)의 별칭으로 정조 6(1781)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설치하면서 창덕궁 안에 있는 규장각을 내각(內閣)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국권을 빼앗기면서 규장각 도서는 여러 곳을 거쳐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되었고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에 남게 되었다.

 

 규장각(奎章閣)

 

 책고(冊庫)는 봉모당 뒤쪽에 세 채가 있으며, 책을 보관하던 서고(書庫)이다.

 

 검서청(檢書廳)은 규장각의 검서(檢書)들이 당직을 서던 규장각의 부속 건물이다. 현재의 검서청은 규장각의 서쪽에 있으며 순종 때 대유재를 바꾸어 부른 것이다.

 

 규장각 뒤편에 역대 선왕들의 유품을 보관하는 봉모당(奉謨堂)으로 드나드는 운한문(雲漢門)이다. 여기서 운한(雲漢)은하수라는 의미로서 임금의 아름다운 덕또는 제왕의 필묵(筆墨)’이라는 뜻도 같이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운한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옥당(玉堂)은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으로 옥같이 귀한 건물이란 의미로서 출세가 보장된 인재들이 모여있는 건물이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한림원(翰林院)의 기능을 홍문관예문관의 둘로 나누어, 홍문관을 옥당이라고 하고 예문관은 한림이라고 불렀다. 이곳을 세 번이나 간 것 같은데 관련된 확실한 사진이 없다.  

 

 약방(藥房)


약방(藥房)은 인정전 서쪽 행각에 가까이 있는데, 이는 임금의 병을 가까이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내의원을 내의사(內醫司), 궁 밖에 있는 의료 기관인 전의감(典醫監)과 혜민서(惠民署)를 외의사(外醫司)라고 부른다. 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복원된 것으로 약방(藥房)’약을 짓는 방이라는 뜻이다

 

 억석루(憶昔樓)는 선원전 남행각에 위치한 내의원에 속한다. ‘억석(憶昔)’신농씨(神農氏)의 거룩한 마음을 생각한다는 뜻이고 영조가 써 준 입심억석(入審憶昔)’에서 따 온 말이란다. 사람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약을 발명하여 사람들의 병을 치료했던 신농씨(神農氏)의 거룩한 마음을 생각하면서 질병을 치료하는 약을 잘 제조하라는 의도를 담고 있다.

 

 고목과 금천


문화해설사는 창덕궁을 돌아보며 현재 모습이 옛날 모습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했다. 지금의 모습은 예전의 10%도 안 되기 때문이란다. 일본인은 조선 왕실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고의로 궁궐을 파손했고, 그 결과로 지금처럼 빈 곳이 많은, 썰렁한 궁궐이 되었다. 또한, 경복궁은 평지에 좌우대칭으로 중국적인 궁궐인데 창덕궁은 산자락에 지은 우리민족의 궁궐이란 말에 동감한다.

 

연재하는 동안 창덕궁 궐내각사 특별관람이 있었나 보다. 홈페이지에 자주 방문했는데도 놓쳐 정말 아쉽다. 창덕궁 후원은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고 창덕궁 탐방은 6회로 마친다.

 

 창덕궁 궐내각사의 가을 전경 문화재청 사진자료실


경복궁의 離宮으로 창덕궁 지었지만

당당한 법궁으로 조선 왕가 안식처

불 타도 또또다시 세운 아름다운 꽃대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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